Page 98 - 고경 - 2022년 6월호 Vol.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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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확산되어 가던 시기에 당나라로 간 적지 않은 신라의 도당유학승들
          은 이렇게 여러 지역을 찾아다닌 후 육조탑을 참배하고 돌아오고는 했는
          데, 중국 선가禪家에서는 무상대사의 명성도 매우 높았기 때문에 정중사를

          참방하고 무상대사의 영당에 참배하는 것은 행각수행을 하던 도당유학승

          들에게는 필수 코스였을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불경을 등에 지고 운
          수행각을 하며 수행하는 구법승의 그림이 있는데, 어쩌면 이런 모습이었
          는지도 모른다.

           이 당시에는 남종선이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어 혜능선사가 남종선의

          종주로 추앙을 받았던 것 같다. 사실 하택종荷澤宗으로 중원지역을 풍미한
          하택신회荷澤神會(684~758) 선사의 영향권 내에서 재구성된 『육조단경六祖
          壇經』에서는 옥천신수玉泉神秀(?~706) 화상이 혜능선사에 비하여 수준 이하

          로 그려져 있지만, 신수대사는 5조 홍인대사 이후 4조 도신道信(580~651)과

          5조의 법문인 ‘동산법문東山法門’을 이은 6조로 존숭되었고, 불교에 의탁하
          여 황제의 지위를 차지한 측천무후則天武后(684~705)의 황실과 귀족들로부
          터도 초빙이 되고 높은 존경을 받았다. 물론 이 시기 이후에 혜능선사는 그

          를 가해하려는 사람들을 피하여 사조원四祖院과 오조원五祖院이 있는 황매

          현黃梅縣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15년간 은거하며 지냈다고 전한다.


            귀국 후 굴산문 부활에 헌신




           행적화상은 885년 헌강왕 11년에 신라로 귀국하여 굴산사를 찾아가 통
          효대사를 다시 뵙고 가까이에서 모시며 수행하기도 했고, 경주의 천주사天
          柱寺와 남쪽의 수정사水精寺에 주석하기도 했다. 통효대사가 병으로 눕자

          다시 굴산사로 돌아와 입적할 때까지 병시중을 하고 그의 법을 이어받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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