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0 - 고경 - 2022년 7월호 Vol.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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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가 『신불교』지에 이처럼 다양한 번
역물을 발표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로
운 현상이다. 세대의 교체, 경전 번역
대상의 확장, 범어 번역, 외국학자 논
서의 번역 등 다양한 의의가 있다.
허영호는 『신불교』 편집자 역할을
벗어난 후 잠시 지면을 떠났다가 24
호에 수필 한 편을 발표하였고, 29호
부터는 본격적으로 학술논설을 투고
하기 시작하였다. 이미 『신불교』 18호
사진 4. 해동역경원 발행 허영호 저술 광고 (2호). 에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를 발굴하
여 소개했던 그는, 「원효불교의 재음
미」(29~35호)를 통해 원효 연구에 깊이를 더해갔다. 「대소품반야경의 성립
론」 5~10회(40, 42, 44, 46, 50, 56호)는 그의 대정대학 졸업논문으로서, 만해
가 편집하던 『불교』지에 연재(96~97, 99, 101·102 합호)하던 것을 이어 소개
한 것이다.
허영호는 1920년대와 1930년대 초 불교청년운동을 전개한 불교청년의
대표주자였다. 1932년 9월 중앙불전 강사로 부임한 그는, 재단법인 중앙
교무원의 40만 원 증자안을 주장하다가 이를 반대하는 교무원 재무부원
정상진과 크게 갈등을 빚은 여파로, 1933년 5월 중앙불전 학감 겸 교수직
에서 사면되었고, 1937년에야 복직되었다. 그는 이 시기에 경남3본산회
의 부속기관인 해동역경원(원장 김구하)에서 불경 번역과 저술에 몰두했다.
이 시기에 그는 경전을 발췌하여 순한글로 번역한 『불교성전』를 펴냈고,
『구사론 대강大綱』, 『불타의 의의』, 『사종四種의 원리』를 해동역경원에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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