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3 - 고경 - 2022년 7월호 Vol. 111
P. 123

간인지 강제적인 정간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음미해 볼 만한 현상
             으로 보인다.
               이후 1년 후 재복간된 『신불교』는 대동아공영권 논리를 반영하여 내선일

             체의 논리를 충실히 전파하는 선전지 역할을 더욱 담대하게 실행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32집(1942.1)부터 종간호까지 두드러진다. 이는 『신불
             교』 초기에 보여주었던 순수한 잡지 발행의 의도가 변질된 것으로서, 잡지
             발행인 개인의 비극이자 시대의 비극이요 근대불교 잡지사의 비극이라 하

             지 않을 수 없다.(사진 6)

               기실 1930년대 잡지는 학인 연맹의 『회광』, 불교청년동맹의 『불청운동』,
             중앙불전 학생회의 『룸비니』, 동경불교유학생동맹의 『금강저』 등이 있어
             역동적인 운동성을 지면 가득 보여준 시기다. 불교청년들이 의기투합하여

             만든 잡지는 학술적 수준이 좀 약화하더라도 불교 개혁의 활발한 운동성

             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비해 기관지를 표방한 『신불교』는 신진의 역량, 개
             혁적 논조는 들어갈 여지가 없는 보수적인 학자, 권력자의 목소리를 반영
             하는 보수적인 잡지로 변모되어 갔다. 종단의 기관지를 성격을 가진 『신불

             교』는 1930년대 잡지의 문화적 다양성과 활발한 생명력을 담보하지 못한

             잡지로 평가된다.




















                                                                         121
   118   119   120   121   122   123   124   125   126   127   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