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7 - 고경 - 2022년 7월호 Vol.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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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는 않는다. 지방의 잡지가 아닌 중앙 잡지
             로서 교단 기관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허영호의 발간에 즈음한 기획 논설에 보면 당

             시 불교계가 31본산으로 권력과 책임이 분산되

             어 있어 통일적 불교사업을 전개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말하면서, 시급히 중앙집권의 기초와 진
             로를 확고하게 하여야 함을 강조하였다.

               『신불교』 1~19호까지 수록된 글을 계산하면                 사진 2.  허영호 사진(1942. 혜화전
                                                              문 이사장).
             권두언이나 교계소식 등 편집실에서 제작한 것
             을 제외하고 필명이 있는 글이 158편이다. 이 가운데 허영호(현주, 경호)의
             글이 23편(누계), 허영호 번역(역술) 관련 글이 33편, 만해의 글이 26편, 강

             유문의 글이 16편이다. 허영호의 글이 약 35%를 차지하고 있고 만해는

             16%, 강유문은 10%의 분포를 보인다. 이들 3인의 총합은 61%가 된다.
               한용운은 이제는 폐간된 『불교』지 발행인으로서 기관지 복간을 표방한
             『신불교』의 등장에 큰 기대를 표명하였다(「『불교』 속간에 대하야」, 1호). 그리고

             현 단계 불교계 현안과 개혁 방안을 모색한 글을 발표하여 허영호의 논리

             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불교 통제안」(2호), 「주지선거에 대하야」
             (4호), 「불교청년운동을 부활하라」(10호), 「삼본산 회의를 전망함」(15호), 「총
             본산 창설에 대한 재인식」(17호) 등이다. 그리고 세계 불교계의 동향을 소개

             한 글(「산장촌묵」)을 연재하였다. 문학작품으로 시로는 <심우장>(9호), 소설

             로 <철혈미인>(1~2호)을 발표하였다.
               허영호는 1933년 7월 이후 약 3~4년 만에 잡지를 복간하면서 자신이 펴
             낸 잡지가 기존의 『불교』지를 계승하고 있음을 형식적으로 표명하였고, 『불

             교』지의 편집 겸 발행인이었던 만해의 글을 다수 실음으로써 계승과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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