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2 - 고경 - 2022년 7월호 Vol.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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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의 어번영御繁榮을 축함」과 「총후
                                          보국銃後報國에 대하여」가 수록되어
                                          있다. 김삼도 편집으로 간행한 20

                                          호에는 「내선일체와 불교도」가 수

                                          록되었고, 이후 김태흡, 권상로, 이
                                          종욱 등의 친일 논설과 홍보가 지면
                                          을  장식하였다.  임석진  편집으로

                                          간행한  43호는  대동아전쟁  1주년

                                          기념호로서 이들의 여러 글과 함께
                                          「대동아전쟁의 전쟁일지」가 수록되
                                          어 있다. 『신불교』는 67호까지 간행
          사진 6. 대동아공영권 논설 (권상로, 32집).
                                          되었지만  대동아공영권과  내선일

          체의 논리를 담은 제도권 기관지로서, 조선의 불교를 대표하는 살아 있는
          문화잡지로서의 생명력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허영호가 18호에 다른 글은 한 편도 수록하지 않은 채 원효의 『대승기

          신론소』의 과목과 전문(상하권)을 실어 간행한 것은 하나의 시대적 메타포

          어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사진 5).아마도 총독부에서 요구하는 일제 정책
          의 홍보지 성격의 변화를 피해 가는 간접적인 저항의 방식이었을 가능성
          이 있다.

           물론 19호에 「황국신민의 서誓」가 목차에 제시되고, 「황실의 어번영을

          축함」이 일본 황실 부부의 사진과 함께 수록된 것의 최종 책임은 편집 겸
          발행인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가 19호를 끝으로 잡지 발행에서
          손을 뗀 것은 아마도 시대의 압박 가운데 겪었던 내적 갈등을 겪은 대응

          방안이 아니었을까 싶다. 19호 간행 이후 1년간 휴간한 것은 자발적인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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