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8 - 고경 - 2022년 7월호 Vol.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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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 중간에 발각되
                                                       면서 표면화된 사건
                                                       이었다. 백서는 압수

                                                       되고, 그해 11월 황

                                                       사영은 능지처참 당
                                                       했다. ‘백서’에는 1785
                                                       년 이후의 조선 천주

          사진 2. 다산초당. 다산은 『만덕사지』에 대한 감정을 맡았다. 사진 강진군.  교회의 사정, 신유박

                                                       해의 상세한 전개 과
          정과 천주교도들에 대한 박해 상황, 주문모 신부의 활동과 죽음, 천주교회
          를 재건하고 신앙의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방안 등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

          다. 조선으로서는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만덕사지』 찬술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기어자굉騎魚慈宏·철경응언掣鯨
          應彦 등은 모두 아암의 제자들이다. 이 가운데 기어자굉은 다산의 문집에
          ‘자홍慈弘’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굉宏’은 홍력弘曆의 피휘避諱일 것으로 추

          측된다.(허흥식, 「만덕사의 편찬과 그 가치」, 『만덕사지』, 아세아문화사, 1977, 455쪽)

          자굉은 『대둔사지』 찬술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이다. 자굉은 그 생몰
          년과 행적이 자세하지 않다. 다만 『다산시문집』에 기어에 대한 글이 단편
          적으로 수록되어 있다.




              고래보다 더 큰 생물은 없으리
              이빨은 설산雪山 같고 지느러미는 금성金城 같네.
              코를 들어 숨 내쉬니 바다가 들끓고

              지느러미 펄떡이매 벼락소리 나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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