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5 - 고경 - 2022년 8월호 Vol.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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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무아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즉 어떤 연기緣
             起의 맥락이 성립하느냐에 따라 파동이 되기도 하고 입자가 되기도 한다.
             입자도 아니고 파동도 아니지만 입자로 나타나기도 하고 파동으로 나타나

             기도 한다. 연기緣起하는 공空이다. 물방울이 하늘로 올라가면 구름이 되고

             땅으로 내려오면 강물이 된다.
               이중간섭 장치에서는 두 슬릿을 모두 열어 놓았을 때에만 빛이 파동처
             럼 행동한다. 같은 장치를 사용하더라도 슬릿 하나를 닫는다는 아주 작은

             변화만 주면 파동처럼 행동하던 빛이 입자처럼 행동을 바꾼다. 내가 관측

             장치를 어떻게 변화시키느냐에 따라 빛은 파동이 되기도 하고 입자가 되
             기도 한다. 어떤 현상이 나타날지가 관찰자의 개입으로 결정된다. 양자역
             학의 관측 결과는 객관 세계 자체가 아니라 주관이 관여한 객관의 모습이

             다. 주관이 참여하면서 그 참여하는 방식에 따라 객관의 모습이 다르게 나

             타난다.
               주관이 참여하면서 대상이 드러난다는 것이 양자역학만의 이야기가 아
             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세계의 모습이 사실은 다 그렇다. 나에게 나타나는

             것은 세계 자체가 아니라 나에게 드러나는 세계다. 바닷물은 짠 것도 아니

             고 짜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그 바닷물이 나에게는 짜고 돌고래에게는 짜
             지 않다. 이처럼 어떤 주관이 참여하느냐에 따라 객관의 모습이 달라진다.
             보다 보편적으로 말하면 어떤 연기적 설정이 이뤄지느냐에 따라 대상의 모

             습이 달라진다. 파동을 만나려면 이중간섭 실험을 해야 하고, 입자를 만나

             려면 광전효과를 보면 된다. 북도봉을 보려면 의정부에 가야 하고, 남도봉
             을 보고 싶으면 백운대에 오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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