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7 - 고경 - 2022년 8월호 Vol.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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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高峯寺에서 개최한 법회에 참
             석하였다. 그는 이때 법회의 분위
             기에 크게 실망한 것이 계기가 되

             어 신앙결사에 뜻을 두게 되었다.

             그 해 가을에 동지 10여 명과 더불
             어 여러 지역을 유력하다가 영동
             산靈洞山 장연사長淵寺에서 개당하

             고 수행하였다. 이렇게 출발한 요

             세는 지눌知訥의 권유에 의해 수
             선修禪을 체험하기도 하였으나 천
             태교관天台敎觀을  확고한  사상적

             기반으로 하였다.
                                              사진 1. 원묘요세(1163~1245).
               그가 사상적인 전환을 하게 된
             계기는 1208년(희종 4) 봄에 영암의 약사암에서 거주할 때이다. 이때 홀연

             히 생각하기를 “만약 천태묘해天台妙解를 의지하지 않는다면 영명연수永明
             延壽가 지적한 120병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라고 하여 연수가 『선

             종유심결禪宗唯心訣』에서 지적한 수행상의 제약을 극복하려면 천태의 묘해
             에 의지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특히 요세는 실천행을 강조했는데, 그 방향을 수참修懺과 미타정토彌陀
             淨土로 인식하고 그 이론적 근거를 『법화경』에 바탕한 천태지자의 『천태지

             관天台止觀』·『법화삼매참의法華三昧懺儀』와 지례知禮의 『관무량수경초觀無量
             壽經鈔』에서 찾았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요세는 1216년(고종 3) 전라도 강진
             의 토호인 최표·최홍·이인천 등의 지원을 받아 약사암에서 강진 만덕산

             으로 주거를 옮겨 본격적으로 백련결사를 결행하였다. 이러한 백련결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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