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8 - 고경 - 2022년 8월호 Vol.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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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강진 백련사 전경. 조선 후기에 만덕사로 불렸다. 신라말에 창건되고, 고려 명종 때 원묘국사 요세
              가 중창하였다. 고려 후기에는 8국사를 배출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8대사가 머물렀던 도량이다.
              사진 강진군.

          1232년(고종 19) 보현도량을 개설함으로써 그 성격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당시 고려는 몽고의 침략을 받아 거국적으로 저항하였는데 보현도량 개설
          은 이러한 사정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1230∼1240년대에는 최우崔瑀를 중심으로 하여 그와 밀착된 중앙 관직

          자, 그리고 많은 문신 관료층이 백련사에 대한 지원과 관심을 아끼지 않

          았다. 예컨대 1237년(고종 24) 여름에 이르러 왕이 75세의 고령인 요세에
          게 ‘선사禪師’의 직함과 함께 세찬歲饌을 내리기도 하고, 1240년(고종 27) 8
          월에는 최우가 직접 발문까지 지어 보현도량에서 계환이 해설을 붙인 『법

          화경』을 간행토록 지원하였다. 더욱이 최우 정권의 이러한 지원과 관심은

          1240년대에 최자崔滋가 상주의 수령으로 부임하여 관내 공덕산에 동백련
          사를 중창한 것과도 연결된다. 이러한 중창에 지역 토호들보다 관의 지원
          이 우선하였다는 것은 당시 백련사가 최우 정권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

          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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