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고경 - 2022년 8월호 Vol.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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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소처럼 번뇌 없는 평화로운 생을 살아 천상에 태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
였던 것이다. 터무니없는 생각이지만 사람이 스스로 특별한 존재가 되고
자 하는 한 못할 일이 없는 것이다.
또 그 정도는 아니지만 육식을 금하는 계율을 절대화하는 일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육식을 하는 자신은 옳고 그것에 철저하지 못한 타인은 문제
가 있다는 식의 생각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육식 금지의 계율은
부처님의 계율이라기보다는 중국불교의 창안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그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계율에 집착하면
서 그것의 실천을 이유로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는 일이다.
이처럼 계율을 지킨다는 것이 자칫하면 분별과 집착을 내려놓고 중도를
실천한다는 불교의 대원칙을 뒤흔드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상황에 따
라 지키기도 하고, 깨기도 하고, 열어주기도 하고, 닫아 걸기도 하는[持犯
開遮] 탄력적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바른 계율
의 수지가 가능하려면 그것이 깨달음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청정한
계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성철스님의 주장이다.
삼학의 나머지 두 항목인 선정과 지혜의 실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무상정등각이 아니면 제대로 된 참선, 즉 바른 선정과 바른 지혜의 닦음이
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해탈, 해탈지견이라는 법신의 나
머지 성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무상정등각이라야 진정한 해탈, 해탈지
견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성철선에서 발심과 수행과 깨달음은 상호검증의 관계에 있
다. 나아가 그것은 도착점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순환구조를 형성
한다. 그리하여 ‘발심→수행→깨달음’의 순행적 인과관계가 성립함은 물론
다시 깨달음에 의해 그 발심과 수행의 진실성이 검증되는 관계가 성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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