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2 - 고경 - 2022년 9월호 Vol.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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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다산이 제7 국사 정오丁午 역시 무외無畏임을 그의 저술 『호산록湖山錄』
          을 언급하며 그 진위를 논하고 있다. 예컨대 다산은 b에서 “무외가 사호賜
          號이고, 정오는 법명法名”이라고 해석하여 『만덕사지』 제7 무외국사가 곧 정

          오임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국통國統 정오대사丁午大師는 충숙왕忠

          肅王 때 사람”이라는 『불조원류』의 기록으로 그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찬자들은 천인과 의선義璇, 백련결사 주맹主盟의 차서次序 등
          고려시대 만덕사를 중심으로 한 백련결사의 인물에 대한 많은 견해를 제

          시하였다. 왕조가 교체되고 불교가 쇠퇴하여 전 왕조의 불교사 자료는 거

          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자료수집과 고거주의에 입각해 사지를 찬술
          하고자 했던 조선후기 『만덕사지』 찬자들은 오류투성이인 『불조원류』를 비
          롯한 단편적인 기록을 기초로 망실된 고려불교를 복원하고자 했던 것이다.




            『만덕사지』와 여타 사지의 차이점


           이밖에 『만덕사지』는 비교적 관련 자료들이 풍부했던 조선시대 불교사

          를 중심으로 찬술했던 『대둔사지』와는 달리 시문과 비문 등 비교적 단편적

          인 기록들을 기초로 사지 찬술에 진력했다. 『만덕사지』의 인용 자료를 통
          해 엿볼 수 있는 것은 첫째, 불교사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과 복원을 위한
          노력들이다. 찬자들은 망실된 전 왕조의 불교사 기록을 수집하여 단편적

          인 수록과 인용에 그치지 않고, 고려시대 정혜결사와 함께 대표적인 신앙

          결사였던 백련결사의 흔적을 고증을 기초로 복원하고자 하였다.
           비록 찬자들이 주장했던 자료의 고증작업과 불교사적 사실에 대한 진위
          여부에 대한 분석은 모호하거나 잘못된 부분도 적지 않다. 그러나 동시대

          에 찬술된 대부분의 사지류가 이전의 기록을 맹목적으로 수록하거나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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