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3 - 고경 - 2022년 9월호 Vol.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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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나 연대 등을 실제보다 이전의 시기로 상정하는 오류를 범한 것에 비하
면, 『만덕사지』는 고거주의에 기초한 객관성을 중시하였으며, 불완전한 채
로 전해오는 고려시대 불교사를 온전히 복원하고자 했던 것이다.
둘째, 불교사 자료의 보존 인식이 강했다.
인근의 사찰을 널리 수색하니 오직 무위사無爲寺의 형미국사逈微國
師는 선덕先德이었는데, 사찰은 현재 폐하고 무너질 지경이라 명
적名蹟이 사라질 것 같다. -만덕사지』 권6
인용문은 만덕사가 위치한 강진의 무위사無爲寺에 남아 있는 <선각대사
편광탑비문先覺大師遍光塔碑文>을 『만덕사지』에 수록하였다. 찬자들은 이미
사찰이 폐허화되어 유일하게 남아 있는 형미국사의 흔적을 수습한 것이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명적名蹟을 보존하고자 하는 의도가 분명한 것이다. 이
러한 면모는 고려 중기에 창건된 강진의 월남사月南寺에 남아 있는 진각국
사의 비문의 사례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찬자들은 “진각혜심의 비가 도리어 월남의 유허遺墟에 있는데 돌이 깨
어지고 밭은 묵어져 오래지 않아 행적이 아주 없어질 것 같다.”고 하면서
비문을 그대로 수록한 것이다. 찬자들은 자료수집의 과정에서 고려시대
만덕사를 중심으로 한 불교사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음을 안타까워했
고, 남아 있는 자료조차도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사찰과 함께 사라질 위
기에 처해 있음을 애석해 했다. 찬자들은 이들 자료가 매우 귀중한 가치
를 지니고 있음을 인식하고 『만덕사지』와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지만 자
료보존의 차원에서 수록한 것이다. 이것이 『만덕사지』와 동시대 사찰과
불교관련 저술들의 두드러진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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