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7 - 고경 - 2022년 10월호 Vol.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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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를 따라갈 준비가 안 돼 있기 때문이다. 물에 들어가서 힘을 빼기만 하
면 몸이 저절로 뜨는데, 안간힘을 쓰면서 물에 뜨려는 것과 같다.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그렇지, 양자역학의 논리는 꽤 간단하다. 측정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어떤 측정을 할지를 정하면서 측정값의 범주가 만들어
지고, 이 범주가 측정값의 영역을 제한한다. 측정값의 영역이 바뀐 새로운
측정을 하면, 이전 관측의 기억은 어쩔 수 없이 사라지게 된다.
이는 불확정성 원리로도 설명된다. 불확정성 원리에 의하면 두 물리량
의 상태를 동시에 규정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는데, 스핀 측정이 양자역학
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예다. 서로 다른 두 물리량의 상태를 규정할 수
없으므로 두 번째 측정으로 처음의 관측 결과가 사라지고 세 번째 측정으
로 두 번째 관측 결과가 사라진다. 이 때문에 위에서 소개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전자는 때로는 과거를 잊기도 한다.
관측으로 대상의 모든 것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스핀 측정은 일상생활이나 고전물리학에서의 측정과 상당히 다른 면모
를 보여준다. 우리는 무언가를 관측하면 대상 전체를 다 파악했다고 생각
한다. 물론 대상의 일부만을 본 것일 테고 그것도 제대로 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이런 부실한 관측을 하면서 대상을 다 알았다고 착각한다.
북한산을 수백 번 오르더라도 북한산을 안다는 건 불가능한데 말이다.
양자역학은 이런 착각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핀
측정에서는 스핀의 어느 한 방향을 측정하면 다른 방향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게 된다. 이전에 측정했던 정보마저도 사라진다. 우리는 아주 조그만
전자의 스핀마저도 그 전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불확정성 원리가 알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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