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1 - 고경 - 2022년 10월호 Vol.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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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은 『동문선』에 실렸다. -아깝다. 조종저 비는 새로 세우면서 최
자崔滋의 비는 다시금 세우지 못한 일이 - 가경 계유년 겨울(1813)
에 내가 경성에 가서 『동문선』에 실려 있는 최자의 비문을 베껴다
백련사에 보냈다. 이 뒤로 부터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고 한다.
c. 응언안應彦案 신번新繁은 현재의 남평현에 속하고, 조계는 현재
의 송광사이며, 강남은 고려 때 지금의 전라도를 두 개의 도로 나
누었는데 담양의 남쪽을 강남도라고 한다고 하다. - 『만덕사지』 권1
인용문은 고려 때 최자崔滋가 지은 원묘국사圓妙國師의 비명碑銘에 대한
찬자들의 견해이다. 이들은 최자의 비문을 수록하고 이에 대한 분석 작업
을 시도하였다. 먼저 자굉慈宏이 찬술 당시까지 비문의 상태를 거론하였다
면, 이청은 경성京城에 가서 『동문선』에 수록되어 있는 비문을 수집하여 백
련사에 보냈음을 언급하였다. 그는 이때 “천인天因과 정오丁午의 실적實
跡을 찾아서 돌아오기도 하였다. 아울러 응언은 비문에 보이는 원묘요세圓
妙了世의 출생지에 대해 세부적인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세 사람의 비문에
대한 언급으로 보아 사지 찬술에 각자의 역할이 있었지만, 사실史實에 대
한 면밀한 고증작업은 찬자 모두가 전권에 걸쳐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표 5> 만덕사지 찬자들의 안案·운云 사례事例
찬 李請 兒菴 慈宏 應彦 勝粲 茶山 謹學 翰英 泰森 設玉 智日
회 자
수 10 1 27 10 3 7 7 4 4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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