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8 - 고경 - 2022년 10월호 Vol.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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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바에 의하면, 그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게 아니다. 원리적으로 불가능
하다. 우리는 이 원리적 한계 안에서 세상을 본다. 이게 세간世間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내가 보는 대상이다
스핀을 측정하면서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인가? 스핀의 어느 한 성분밖
에 볼 수 없지만, 그마저도 그 자체를 보는 게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관
측에 따라 변하지 않는 그 자체를 볼 수 있다면 처음에 어떤 방향의 스핀
을 측정한 다음에 다른 방향의 측정을 한다고 해서 이전에 알아냈던 측정
값의 정보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스핀 전체가 아니라 스핀의 어느 한
방향만을 보더라도 관측과 상관없이 변하지 않는 실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3)
는 것을 양자역학은 보여줬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양자역학과 아주 다른가? 그렇지 않다. 양자역학과
마찬가지로 우리 몸의 감각이 세상을 보는 데에도 측정값의 범주가 존재
한다. 우리 눈은 가시광선 영역의 빛만 볼 수 있고, 우리 귀는 가청주파수
영역의 소리만 들을 수 있다. 모든 감각기관이 다 그렇다. 우리가 보는 것
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측정값의 범주 안에서 드러나는 대상의 모습이다.
그래서 돌고래나 고등어에게 바닷물은 짜지 않다.
돌고래에게 바닷물이 짜지 않다는 것은 짠맛이 바닷물의 실체가 아니라
는 것이다. 바닷물은 본래 짠 게 아니다. 본래 짜지 않은 바닷물이 나에게
3) 아인슈타인은 어떤 방식의 관측으로도 드러나지 않는 실체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고, 이를 기술하지
못하는 양자역학은 불완전하다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의 문제 제기 후 55년의 긴 검증 기간을 거친
후, 이런 실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에 대한 내용은 개념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복잡
하고 정교한 논의를 포함하고 있어서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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