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5 - 고경 - 2022년 10월호 Vol.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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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대학에서 열었고,
석탑에 대한 학술논
문인 「조선탑파 개설」
을 발표했다.
1933년 4월 오랜
사진 3. 고유섭 선생이 관장으로 재직하던 1930년대의 개성부립박물관 전경.
기간 공석이었던 개
성부립박물관의 관장이 되었고 이후 10여 년간 재직했다. 당시 개성은 지
역 유지와 상인들의 요구로 전기회사나 은행 등의 기관장을 조선인이 맡
는 일이 적지 않았다. 비록 29세의 많지 않은 나이였지만 고유섭은 경성제
대 출신의 유일한 조선인 미술전공자로서 최적임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는 매주 토요일에 답사를 다니며 문화재와 유적을 사진으로 남겼고, 「고려
의 불사佛寺 건축」(1935), 「불교가 고려 예술의욕에 끼친 영향의 일고찰」
(1937) 등의 논문을 썼다.
한편 1936년부터 연희전문학교와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강의를 맡으
면서 문화유산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높이고 미술사학계를 이끌어 갈 후
학을 양성했다. 특히 개성 출신의 황수영, 진홍섭, 최순우는 이후 한국 미
술사학계를 이끈 이들로서 답사를 함께 다니며 고유섭의 훈도를 받고 학
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고유섭은 1930년대 내내 전국의 유적과 금강산,
경주 등의 사찰을 다니며 유물의 조사 수집과 연구에 전념했다. 그는 “우
리 문화 가운데 세계적으로 연구해야 할 첫 번째 대상은 석탑이고, 둘째는
불상”이라고 했는데, 석탑뿐 아니라 석굴암의 불상 같은 불교 조각에 큰
관심을 가졌다. 「한국의 조각」(1940)에서는 조각을 매개로 하여 한국 미술
사의 시기 구분을 시도했다.
그는 회화와 조각, 공예와 건축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는 150여 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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