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3 - 고경 - 2022년 10월호 Vol.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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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섭은  1905
             년 2월 2일 인천의
             용동에서  태어나

             10세 때 인천공립

             보통학교에  들어
             갔고 1919년 3·1
                                 사진 2. 경성제국대학 전경.
             운동 때는 직접 그

             린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다가 체포되어 3일간 구류를 당했다고 한다.

             1925년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했고 국내 유일의 대학이었던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했다. 이때 문학 동아리인 문우회에 가입해 이효
             석 등과 함께 활동했다. 그는 동아일보에 시조 ‘경인팔경’, 문학잡지 문우에

             수필 ‘고난’, 시 ‘해변에 살기’, 조광에 ‘애상의 청춘일기’를 발표하는 등 문학

             에도 심취했다.
               1927년부터는 경성제대 법문학부 철학과에서 우에노 나오아키, 다나카
             도요조 등에게 배우며 미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미술사를 연구하겠다

             는 그에게 “이쪽 분야는 어려운 길이라 집안이 넉넉하지 않으면 공부를 계

             속하기 어렵다.”는 지도교수 우에노의 조언이 있었지만 그는 “관심 있는
             분야를 마음대로 공부해 보고 싶다.”고 했고, 뒤에 유명한 국어학자가 된
             이희승이 전공 선택의 이유를 묻자 “우리의 미를 연구하고 싶다.”고 했다

             는 일화가 전한다. 그는 경성제대에서 미학과 미술을 전공으로 택한 최초

             의 학생이었고 이후에도 일본인 학생 한 명만 있었을 정도로 인기 없는 불
             모지의 학문 분야로 뛰어든 것이다.
               도쿄제대를 졸업하고 베를린대학에서 유학한 우에노는 경성제대 미학

             연구실의 주임교수로서 미학개론, 서양미술사 및 강독연습을 강의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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