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8 - 고경 - 2022년 11월호 Vol.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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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기로 당시 어
                                                른들이 하신 걸 물려받아 출
                                                발했으면 우리는 그것을 마

                                                무리해야 될 의무가 있어요.

                                                이 때문에 “앞으로는 <고려
                                                대장경>만  번역하자.  그리
                                                고 <고려대장경>이 아닌 것

                                                은 아무리 인기가 좋고 사람

                                                들이 원하더라도 그건 다음
                                                으로 미루자.”고 했어요.
                                                  그런데  반대하는  사람들

                                                이  있었어요.  그렇게  하면

          사진 9.  한글대장경 완간 회향법회(2001년 9월 5일 장충체육  문제가 생긴다는 겁니다. 인
              관), 사진 불교신문.
                                                기 있는 걸 만들어야 책이 팔
          리고 돈이 돌아가는데, 그런 책을 내지 않으면 돈줄이 막히게 되는데 그런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거지요. 그래서 “그건 내가 후원회를 만들어서

          보충하겠다.”고 했지요. 그래서 후원회를 만들어서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석주 노스님한테 가서 졸랐어요. “상황이 이러이러한데 제 힘 가지고는
          안되겠습니다. 스님을 우리 스님처럼 생각하고 모시고 할테니까 후원회장

          직함을 좀 맡아주십시오. 결코 스님보고 모금해 오라고 하진 않겠습니다.”

          하고 부탁드렸더니 스님께서 그러라고 하셨어요. 그게 정월 며칟날인데 봉
          은사 법당을 빌려 가지고 동국역경원 후원회를 발족하게 되었습니다.
           봉은사는 역경원을 설립하고 종회에서 종단적으로 역장譯場을 지정한

          절이에요. 나는 사실상 역경원장 하는 동안에 후원회에 많은 힘을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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