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2 - 고경 - 2022년 11월호 Vol.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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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관련 자료를 망라하여 자
                                              신의 논지를 증명하는 방식이
                                              었다. 이와 같은 체제는 다산

                                              이 1811년 찬한 『아방강역고我

                                              邦疆域考』에서도 살필 수 있다.
                                                대체로 찬자의 결론을 앞에
                                              다 제시하고 그 다음에 그 결론

                                              을 뒷받침하는 국내의 자료를

                                              넓게 망라하면서 그 자료에 대
          사진 1.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 조선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우리나라 강역에 관하여 1811년에       한 자신의 의견을 ‘안설按說’로
               편찬한 지리서.
                                              써 비판하고 검증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른바 강목체 역사서술이다. 강목체는 ‘강綱’에 해당하는 본

          문과 세부서술의 ‘목目’을 구성하고 있다.
           당시의 강목체 서술은 의리론과 역사를 새로이 인식하고, 현재의 위치

          를 명확히 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비롯되었다. 불교계에서는 중관해안中
          觀海眼의 금산사(1636)·화엄사(1636)·대둔사사적기(竹迷記, 1636)를 비롯

          해 『대둔사지』가 강목체재 하에서 찬술되었다. 적어도 불교가 비록 탄압과
          소외의 상황 속에 놓여 있었지만, 자국사에 대한 자주적 인식이 강조되고
          있었던 상황에서 불교사 역시 일반사 차원에서 찬술되고 인식되었다.




              “자굉안慈宏案 본조本朝 스님들의 계열은 만력萬曆(1573~1620) 이래
              두 개의 종파로 나뉘어지는데 하나는 청허종淸虛宗이요, 하나는 부
              휴종浮休宗이다. 청허의 종파는 수십으로 전파되었으나 그 큰 줄기

              는 둘이니 하나는 소요태능종逍遙太能宗이요, 하나는 편양언기종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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