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4 - 고경 - 2022년 11월호 Vol.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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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이 대흥사를 선교학의 종원宗院으로 부상하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12강
          사 또한 12종사가 대흥사를 선교의 근기根基로 마련하였다면, 화엄학을 중
          심으로 한 강회를 통해 대흥사를 더욱 발전시킨 인물이다. 소요태능은 남

          쪽지방을 두루 유력하며 제방의 선지식을 찾아다닌 끝에 부휴선수에게서

          대장경을 배웠으며, 다시 휴정을 찾아가 물어 비로소 무생無生의 실상을 깨
          닫게 되었다.
           소요의 제자 해운경열은 스승 소요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수백여 명이

          나 되는 소요의 문도 가운데 오직 해운만이 종통宗統을 이었다고 한다. 때

          문에 그의 호 ‘해운’은 “붕새가 남쪽바다로 옮겨 감”을 뜻하는 것이고, 붕새
          가 날아가는 것은 자유로이 노닌다는 ‘소요逍遙’를 의미하는 것으로 소요가
          해운에게 법을 전한 것이 당연하다고 할 정도였다. 일찍이 소요는 해운에

          게 주는 전법게傳法揭에서 “선망禪綱의 교골敎骨을 누가 대적하며, 화월華

          月의 이풍夷風을 누구에게 전할까.”라고 읊기도 하였다.



              “이러고부터 종풍宗風은 오래도록 적적寂寂하였다. 대명大明 천계天
              啓의 말엽(1621~1627)에 취여삼우 대사가 있었는데, 다시금 산예狻

              猊의 자리를 웅거雄據하여 거듭 용상龍象의 석席을 개당開堂하다.”
              - 『만덕사지』 권4



           만덕사는 고려중후기 결사운동으로 불교의 본분과 중흥의 면모를 일신

          시켰지만, 고려말 조선초 불교의 탄압정책과 사찰의 소실로 겨우 명맥만
          을 유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전란 이후 소요로부터 시작된 만덕사의 종
          풍宗風은 당시 불교계에서 유행한 선교학과 함께 부활하였다. 예컨대 취여

          삼우가 “원묘圓妙의 도량을 중흥시키고, 소요의 과업課業을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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