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고경 - 2022년 11월호 Vol. 115
P. 94
없이 스스로를 활짝 드러냅니다.
대략 천 년쯤 전, 송나라에 황정견(1045~1105)이라는 시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선종의 영향을 깊이 받은 사람인데 저명한 선사인 법수, 조신, 유청,
오신 등과 왕래하면서 많은 일화를 남겼습니다. 그가 회당선사(1025~1100)
와 나누었던 아름다운 대화가 전해 옵니다.
처음에 노직魯直(황정견)이 회당선사에게 나아가 도를 물었더니. 선
사가 말하기를, 『논어』에 “너희들은 내가 무엇을 숨긴다고 하느냐,
나는 숨기는 것이 없다.”라고 했는데, 공은 평소 어떻게 이해하십
니까? 라고 하였다. 노직이 해석을 하였더니 선사는 “아니올시다.”
라고 하며 미혹과 혼란이 끝이 없었다.
하루는 회당선사를 모시고 산행山行을 하였는데 때는 나무가 무성
할 때였다.
선사 : 나무 향기가 납니까?
노직 : 예, 납니다.
선사 : 나는 숨긴 게 없습니다.
노직이 확 풀리면서 깨닫고 예를 갖추었다. 1)
회당선사가 한 “나는 숨긴 게 없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황정견이 깨달
은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실치 않지만, 아마
도 그 깨달음은 궁극의 실재에 대한 직접적인 대면對面이었을 것입니다. 깨
1) 彭際淸 編, 『居士傳』, 1775, 卷26 黃魯直條 : “初魯直詣晦堂禪師問道 晦堂曰 論語云 二三子以吾爲隱
乎 吾無隱乎爾 公居常如何理論 魯直呈解 晦堂曰不是不是 魯直迷悶不已 一日侍晦堂山行時 木樨盛放
晦堂曰聞木樨香否 曰聞 晦堂曰吾無隱乎爾 魯直釋然 卽拜之.”
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