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7 - 고경 - 2022년 11월호 Vol.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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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
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랍비는 번역하면 선생
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
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5)
석가모니와 예수가 이처럼 비슷한 맥락에서 똑같은 말을 했다는 것은 참
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와서 보라”는 것은 본래의 고유한 모
습을 스스로 내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 실체의 궁극적 본질,
다시 말해서 깨달은 사람이 살아가는 인간적 삶의 본질은 말로써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는 것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는 것이란 의
미도 숨어 있는 것입니다.
평범하고 편안한 산의 즐거움
2시간을 걸어 해발 194m에 있는 산불감시 초소까지 왔습니다. 두리봉
(216m) 정상은 군사시설이라 올라갈 수 없어서 빙 둘러온 셈입니다. 뭐, 말
이 났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정상에 오르고자 하는 욕심은 원래 없었습니
다. 그냥 이렇게 등산복을 차려 입는 것이 좋고, 산속에 있는 것이 좋을 뿐
입니다.
나이가 들면 높은 산, 험한 산, 이름 있는 산보다 평범하고 편안한 산이
좋습니다. 호젓한 산길을 걸으면 저 멀리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합니다.
남 보기에 하찮아 보여도 육체를 움직이는 일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일
5) 『요한복음』 1: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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