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4 - 고경 - 2022년 12월호 Vol.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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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점차 힘을 잃어갔고, 마르크스주의자, 동방문화파, 서방문화파가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해 논쟁하게 되었다.
동서문화 논쟁은 대략 세 시기로 전개되었다. 첫 단계는 1915년 『신청년』
의 창간에서 1919년 5・4운동 시기까지로, 동서문화에 관한 논쟁은 동양
문화와 서양문화의 우열을 비교하는 데 집중되었다.
두 번째 단계는 5・4운동 이후로, 이때에는 동양문화와 서양문화가 조
화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중심이 되었다. 동양문화와 서양문화가 ‘옛 것
[舊]’과 ‘새 것[新]’의 문제로 발전하였고, 신문화와 구문화에 실질적인 차이
가 있는가, 두 문화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로 발전하였다.
세 번째 단계는 양계초가 『구유심영록』을 발표하고 양수명이 『동서문화
와 그 철학』을 출판하는 시기로서, 동서문화 논쟁이 가장 격렬하게 일어났
던 시기이다. 이때는 봉건주의 문화와 자본주의・사회주의 문화의 관계를
중심으로 논쟁이 진행되었다.
동방문화파의 동서문화관: “동서문화는 성격의 차이”
동서문화 논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모두 중국의 문제는 반드시 사상・
문화의 측면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문화결정론적 인식을 공통적으로 가
지고 있었다. 중국을 포함한 동양의 위기는 사회 한 부분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 전체의 문제이므로, 중요한 것은 사상의 개혁, 문화운동이지 정치문
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사상・문화의 힘으로 시대적 문제를 해결하려
는 것이 당시 지식인들의 공통적인 전제였다. 그것이 당시 동서문화 논쟁
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이유이기도 하다.
문화는 기본적으로 자연과 상대되는 개념으로, 지역이나 민족, 사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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