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7 - 고경 - 2022년 12월호 Vol.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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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난 원말元末 임제종의 담악曇噩(1285~1373)이 편찬한 『명주정응대사포
대화상전』에만 실려 있어 위작僞作일 수도 있지만 선종을 대표하는 게송 가
운데 하나입니다. 거창한 해설이나 화려한 묘사와 대구對句도 없이 그저 평
범한 일상용어만 썼습니다.
포대화상은 모를 심는 단순한 노동 속에서 커다란 이치를 발견한 것입
니다. 머리를 숙여야 물에 하늘이 나타난다든지, 퇴보가 바로 전진이라는
이치는 모두 중의적重義的이며 불도佛道와 처세에 대한 가르침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글자들이 다 소박하지만 독보적이면서도 평온하고 태연자약한
가운데 불도와 처세에 대한 깨달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짧은 시간, 호흡을 조정하고, 공기의 냄새를 맡아봅
니다. 새소리를 들으며, 저 세상을 향하여 귀를 기울입니다. 꽃잎 하나에
도 삼라만상이 있고, 나뭇잎 하나에도 부처가 있습니다.
대자은사는 원래 1,897칸의 방이 있었고, 300명이 넘는 승려가 있었던
큰 절이었습니다. 지금의 대자은사도 규모가 적지 않지만 원래 규모의 십
분의 일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저쪽에서 옛 영광을 기억하는 스님 한 분이
당나라 시대로부터 천천히 걸어오는 듯합니다.
나는 대자은사의 길고 긴 길을 걸으면서 고요함을 가슴 가득 담고 갑니
다. 고요함과 침묵이야말로 종교적인 것으로 진입하는 문이 아닐까요. 일
체의 번잡스러움 너머에서 인간 영혼이 신성한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저 앞에 있습니다. 시안에 부는 차가운 바람은 스치는 모든 나뭇잎을 뒤집
어 놓으며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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