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0 - 고경 - 2023년 1월호 Vol.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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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어느 큰스님은 불교든 기독교든 “기복종
교로서의 종교의 역할은 이제 끝났다. 밖에 나가 밭 갈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고 종교를 가져서 복 받은 일이 있냐고 물어보시라.”고 단언할 정도였습
니다.
사실 옛날에는 병이 나도, 먹을 것이 없어도, 억울한 일을 당해도, 고민
거리가 있어도, 긴장을 해소해야 할 일이 있어도 찾아갈 곳은 교회나 절 같
은 종교 기관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프면 병원에 가고, 돈이 없
으면 은행에 가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경찰서나 법원에 가고, 고민거리가
있으면 상담사에게 가고, 긴장을 풀 일이 있으면 여러 가지 여가산업이 제
공하는 편의시설을 찾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습니다. 자연히 종교와 관계
없는 삶을 살게 되는 탈종교화 현상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탈종교화 현상의 가속화
그런데 이런 탈종교화 현상이 이번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더욱 가속화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종교, 특히 기독교와 불교는 주로 기복신앙에 기
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번 코로나 사태로 아무리 열심히 빌어보아
도 병을 물리치는 데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인간을 사
랑한다는 신이나 불보살이 어찌 이런 몹쓸 병을 우리에게 준다는 말인가?
다 모여서 기도하자고 모였는데, 이렇게 모여 기도한다고 병이 물러가기
는커녕 오히려 더 확산되는 것을 보고 종래까지 가지고 있던 초자연적 힘
에 대한 믿음이 더욱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연히 빌기만 하면 모
든 것이 해결된다고 가르치는 종교에 대한 신뢰심이 더욱 희박해지고 결
국에는 종교에서 떠나는 결과에 이르기 마련입니다. 어느 사회학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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