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0 - 고경 - 2023년 1월호 Vol.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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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사건이 일어난 해이다.
당시 프랑스 파리에 세계불
학원 설립을 마치고 귀국한
태허는 경악하였고, 일본
불교연합회에 전문을 보냈
다. “고도古都가 하루아침
사진 2. 항일전쟁과 승려들의 참여.
에 지옥으로 변했다. 철병
을 간곡히 요구한다. 일본
당국에 압력을 행사해 주기
바란다.” 물론 일본에서는
이에 대한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3년 후, 일본군이 만주를
침략하였을 때도 태허는 ‘대
사진 3. 만주사변과 괴뢰 만주국 수립.
만과 조선, 일본의 4천만 불
교도들에게 보내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일본과 조선, 대만의 불교도들은
붓다의 구세정신을 계승할 의무가 있다. 모두 일어나 군벌을 폐출하고 전쟁
을 제지하여 세계평화 구현에 앞장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만주사변 2년 후, 상해사변이 발발하자 태허는 승려로서 산속에서 염불
만 할 것이 아니라 현실 참여를 적극 권하였다. “동북아에서 벌어진 사건
이 중국과 일본 양국의 안전을 위협한다. 전쟁은 승리자가 없고, 모두 패
배자로 전락한다. 일본 당국은 중국의 동북 지방을 원래 모습대로 회복시
키기 바란다.”고 주장하였다.
일본이 산해관山海關을 침범하자 태허는 불교와 호국을 연관시키며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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