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고경 - 2023년 1월호 Vol. 117
P. 27
나 근대시기 티베트의 국권이 붉은
중공 치하로 넘어가면서 어언 50년
간 ‘죽竹의 장막’에 철저히 가려 있었
기에 한동안 티베트는 대설산 너머
신비의 구름 속에 가려진, 그런 이미
지로 고착되어 버렸다.
그러나 세기적 해빙무드에 따라 티
베트도 개방되었고, 이어서 1992년
에는 한중수교가 이루어지며 한반도
의 문까지 열리게 되었다. 그 이듬해 사진 1. 1995년 카일라스 첫 안꼬라에 선 필자.
필자도 마침내 티베트 본토의 수도
라싸(Lhasa)에 들어갈 수 있었고, 뽀딸라궁을 향해 오체투지를 드리는 감
격을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는 내친김에 티베트대학에 적을 두고 우리와
티베트의 종교와 민속문화의 연결고리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틈틈이 멀
고 먼 카일라스(St. Kailas) 산을 여러 차례 순례하면서 저술에 몰두하여
2000년에는 ‘수미산설須彌山說’을 주제로 한 『티베트의 신비와 명상』(도안사)
을, 이어서 『티베트의 역사산책』(정신세계사)와 『티베트 문화산책』(정신세계
사)을 출간하면서 우리나라에 ‘티베트학(Tibetology)’의 초석을 놓는 데 미력
이나마 일조할 수 있었다.
하늘 고개의 땅, 라다크Ladakh
앞에서 오랫동안의 티베트 본토의 원천 봉쇄로 인해 티베트 마니아의 갈
증 해소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안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