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 - 고경 - 2023년 1월호 Vol.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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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동화사 금당선원.



               육조스님은 “수시로 부지런히 닦아, 먼지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는

             신수스님의 경계를 부정했다. “본래 한 물건이라 할 것도 없는데, 어디에

             서 먼지가 일어나냐.”는 것이었다. 이처럼 남종선에는 월반의 미학과 판을
             깨는 통쾌함이 있다. 해방감마저 충만하다. 그런데 육조스님의 이 선언을
             이해하는 일과 직접 그렇게 되는 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사실 육조

             스님의 선언은 여래의 이치를 밝힌 것인 동시에 스스로 도달한 경계를 밝

             힌 것이기도 하다. 당시 육조스님은 번뇌의 먼지가 일어나지 않는 차원에
             서 스스로 부처가 되어 소요하는 중이었다.
               우리가 이 깨달음의 말씀을 듣고 당장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수행은 필

             요 없다. 그런데 이 말을 이해한다고 해서 나의 중생 살림이 해소되는 것

             은 아니다. 이 지점에서 수시로 부지런히 닦자는 신수스님의 제안이 ‘조심
             스럽게’ 재소환될 필요가 있다. 원래 육조스님이 부지런히 닦는다는 신수
             스님의 실천을 비판한 것은 그것이 닦는 주체와 닦음의 대상을 설정하는

             위험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지런히 닦는다는 주체의식은 아상의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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