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고경 - 2023년 1월호 Vol.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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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환경을 감지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남의 관점에 휘둘리는
일을 해파리가 새우의 눈을 빌렸다고 표현한다.
경전적 지식과 이해가 바로 그렇다. 경전은 불교적 여정을 알려주는 훌
륭한 가이드 북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여행이 깊어져 미지의 세계에 들
어가는 입장이 되면 참고할 가이드 북을 다시 찾는 대신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
그래서 경전을 버리고 참선에 뛰어드는 사교입선捨敎入禪은 단순한 선택
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적 과제다. 경전적 지해를 버려야 진정한 참선에 들
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해의 틀을 부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지해가 남아 있는 한 무심은 완전해질 수 없다. 그러니까 참선자에게 책을
보지 말라고 강조한 성철스님의 가르침은 괴팍한 노장의 고집이 아니다.
그것은 원칙의 문제이다. 성철스님이 배격한 것은 책이 아니라 우리의 수
행 현장에 지해가 개입하는 일이었다. 성철스님의 분파분증에 대한 비판
역시 지해의 안내를 받는 참선이 과연 진정한 참선일 수 있는가에 대한 근
본적 회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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