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고경 - 2023년 1월호 Vol.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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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초주견성론을 “절대로 추종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것이다. 성철
스님은 동화사 금당선원(사실은 운부암에서였던 것 같지만)에서 오도송을 읊은
뒤 그 경계가 변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한 번 깨달은 뒤 한결같았다면 그것
은 궁극의 깨달음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성철스님의 초주견성론 비판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자신의 견성 체험이다.
물론 그것은 분명한 경전적 근거를 갖는 것이기도 하다. 성철스님이
제시한 바와 같이 『기신론』에서는 견성을 구경각과 동일한 것으로 보았
고, 『대열반경』에서는 대열반과 동의어로 다루었으며, 『종경록』에서는 여
래지의 다른 표현으로 보았다. 또 『유가론』에서는 “10지 보살이 불성을 보
는 것은 얇은 비단을 사이에 둔 것과 같다.”고 했다. 10지 보살조차 완전한
견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공평하게 보자면 초주에 견성하여 깨달음을 완성해 나간다고
보는 경론도 있고, 10지는 물론 등각조차 아직 견성하지 못했다고 보는 경
론도 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과 수용의 문제로 보인
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선문에서는 완전한 깨침이라야 견성이
라고 인정하는 쪽이다. 이에 비해 교학에서는 자발적 수행의 동력이 일어
나는 지점[眞因]을 견성이라고 보는 견해가 더 강해 보인다.
성철스님은 간화선을 수행한 끝에 모든 장벽이 무너져 부처가 남김없이
드러나는 체험을 한다. 성철스님은 이것을 전파원증全破圓證이라고 표현한
다. 분파분증의 상대어인 셈이다. 그러면서 그 경계를 ‘칠통이 깨지는 일’
로 묘사한다. 칠통은 새까만 옻을 담은 통이다. 그처럼 까맣게 모르던 무
심의 끝에서 단번에 수천 수백의 태양이 빛나는 광명의 세계로 뛰쳐나가
는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이것은 간화선, 혹은 남종선의 상징
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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