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5 - 고경 - 2023년 2월호 Vol.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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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지고, 세상도 그만큼 더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연기 사상은 자아가 궁극
             적으로 허상이라는 것을 형이상학적 이론으로 뒷받침해준 셈입니다.
               불교에서는 개인의 자아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물도 그 자체로는 독

             립적 실체가 아니라고 하는 것까지 이야기합니다. 무아를 영어로 ‘no-

             self(자아 없음)’이라고만 번역하지 않고 ‘no-substance(실체 없음)’이라고 번
             역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물이 그 자체로 궁극적 실체가 아니라
             고 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하는데, 이것은 모든 것이

             덧없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두가 괴로움이라는 일체개고一切皆苦와 함께

             전통적으로 불교의 핵심 사상이라고 하는 삼특상三特相, 곧 모든 사물이 생
             래적으로 지니고 있는 ‘세 가지 공통적 모습’이라 봅니다.



                무아사상의 난점



               무아의 가르침을 논리적 귀결이라 볼 수 있지만, 엄격히 따져 보면 논리
             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업(karma)’의 원리대로

             라면 내가 지금 한 행동에 대해서 나중 내가 책임을 진다는 이야기인데, 지

             속적으로 존재하는 ‘나’가 없다면 내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은 누구일까?
             그뿐 아니라 ‘나’가 없다면 내가 행동한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누구일까?
             하는 문제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문제는 불변하는 실체로서의

             ‘나’를 상정해도 쉽게 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무아 같은 가르침이 이론적으로 일관성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
             은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화급한 문제가 아닙니다. 부처님이 했다는 독화
             살을 맞은 젊은이의 비유에서 이런 생각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어느 청년

             이 독화살을 맞았는데, 사람들이 달려와 독화살을 빼려고 하자, 그 청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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