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6 - 고경 - 2023년 2월호 Vol.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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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화살을 빼기 전에 독화살과 그것을 쏜 사람 등에 대한 정보를 먼저 알아
          야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아라는 허상에 사로잡혀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그런 허상을 깨는 것이 급선무이지, 그것이 논리적으로 일

          관성이 있는가 없는가 따져 묻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부처님은 사변이나 이론을 위한 이론을 경계했습니다. 어느 제자가 세상
          이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하는 등의 14가지 질문을 했을 때 침묵했습
          니다. 이른바 무기無記입니다.




            나가면서


           어찌 보면 이렇게 자기를 부정하는 것, 자기를 잊는 것, 자기와 사별하

          는 것이 ‘희생의 길’, ‘고난의 길’ 심지어 ‘바보의 길’이라 여겨질 수도 있습

          니다. 그러나 종교의 길에서 이런 심층에 이른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것이
          야말로 우리를 묶고 있는 목줄에서 벗어나는 자유와 해방의 길이요 창조
          와 발견, 자각과 성장, 평화와 기쁨의 길, 더할 수 없이 아름답고 보람된

          길이라 증언합니다. 이제 우리도 불교를 나의 이기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비는 수단으로만 여기는 대신, 이렇게 나를 비움으로 얻을 수 있
          는 청복을 약속하는 심층 종교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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