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4 - 고경 - 2023년 2월호 Vol.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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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6.  홋구지法句寺. 신센이 난징에서 귀국한 후 설립한 진종 오타니파 사원.


          학으로 승격시키고, 교육을 통해 포교를 확대할 목표를 세웠다. 신센이 상

          하이 별원에서 포교할 때 주요 상대가 문인들이었다면, 난징에서는 정관
          계 인사나 군인들로 업무 내용이 크게 변했다.
           1899년, 의화단의 난으로 인해 귀국한 신센은 동료 서도가인 구사카베

          메이가쿠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포교사로서의 그의 포부가 드러나

          있는데, 우선 난징에 이어 광동성에도 동본원사 학당을 창립할 계획에 참
          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다시 건강을 잃어 본산의 요구에 응할 수 없게 되
          었다. 설상가상으로 동본원사 개혁운동에 가담한 것이 빌미가 되어 승적

          박탈과 함께 본산에서 추방당했다(1902). 1904년에 본산으로부터 승적을

          복구한다는 통지를 받았지만, 병이 악화해 다시 중국으로 도항하지는 못
          했다.
           신센에 대한 당대 및 후대의 평가는 포교사가 아닌 서도가로서의 평가

          가 많다. 가장 먼저 평가한 이는 동시대에 함께 활동한 구사카베 메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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