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5 - 고경 - 2023년 2월호 Vol.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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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日下部鳴鶴(1838~1922)이다.
그는 신센에 대해 “상당히 많은
서적을 읽었다. 메이지 서도
사書道史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라는 평을 했다. 구사
카베의 평은 신센 사후에 이루
어진 것으로 신센이 활동 당시
에는 다소 비판적이었다. 이외
에도 “중국의 양수경楊守敬과
비견할 만큼 예술성이 뛰어나
다.”, “전초합체篆草合体가 자
유분방하다.” 등의 평가를 받
았다. 사진 7. 구사카베 메이가쿠日下部鳴鶴.
후대의 많은 이들은 신센과
구사카베 메이가쿠를 비교했다. 두 사람 모두 북파 서풍을 도입해 일본 서
예의 근대화를 꾀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대별점은 구사카베는 일본 서
도의 근대화를 위해 전면적으로 중국 서도를 따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일본 서도계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문파
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반면, 신센은 문파를 형성하지도 서파書派에 얽매
이지 않고 서도에 대해 자유로운 입장이었다. 매사에 구애받지 않는 그의
성격과 맞물려 자신만의 독자적인 서풍을 확립했다. 신센의 자유로운 성
정이 사명감으로 충만한 쿠사카나베에게 비판으로 돌와왔지만, 어디까지
나 신센은 포교사라는 본업에 충실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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