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 - 고경 - 2023년 2월호 Vol.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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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있는데 그렇게만 공부하면 인간적으로도 못 쓰게 되어 버립니다. 그
런 것을 고적병孤寂病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떨어지면 공부 성취는 고사하
고 사람까지 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내가 말하는 것은 부처님 근본법이 나
쁘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공부하는 데 모든 장애를 없애고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라는 뜻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 스님들은 고적병을 염려해서 분주한 곳에 있으면서도 화두
를 익히라고 하셨습니다. 분주한 곳에서는 처음에야 물론 공부가 잘 안 되
는 것 같지만 자꾸자꾸 공부를 익혀 나가면 분주한 곳에서도 공부가 아주
잘 되는 경지에 이릅니다. 그런 동시에 환경이 분주하니 고요하니 하는 생
각이 없어져 버리고 언제든지 고요한 곳이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 마음을 쉬어버리면 아주 시끄러운 장터 가운데
있어도 깊은 산중에 있는 것과 같이 고요하게 되고, 아무리 깊은 산중에서
혼자 토굴을 짓거나 땅굴을 파고 들어앉아 있다 하더라도 마음을 쉬지 못
하면 시끄러운 장터에 앉아 있는 것보다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산 속에
있어도 자꾸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의 번뇌망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결
국 참다운 고요한 곳이란 자기 마음을 쉬는 데 있습니다. 즉 발심發心하는
데 있다는 말입니다. 근원적으로 마음을 쉬어야 하는 것이지 환경과 처소
로써 고요한 곳을 찾다가는 영원히 공부를 하지 못하고 맙니다.
육조六祖(638~713) 스님의 예를 들면, 부처님은 언제든지 참선법을 말씀
하셨는데 육조스님은 누구든지 앉아서 참선하는 것만 보시면 몽둥이로 때
려 쫓아버렸습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 부처님께서 자꾸 좌선을 해라,
좌선을 해라, 하시는 것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방편이고 그때는 주로 그
런 방법을 많이 써야 했지만, 그 뒤에 보니 좌선하는 데만 많이 집착하게
되어 도리어 역효과를 나타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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