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고경 - 2023년 2월호 Vol.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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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시해되자 군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육사 동료와 후배들을 규합하여 군
             사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다.
               이에 반발하여 1980년 봄에 대학가를 중심으로 민주화 시위가 거세게

             일어나자 군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정치 지도자들을 대거 구속하여 감옥

             에 보내고 대학에 탱크와 군인들을 보내어 탄압한다. 특히 민주화 시위가
             격렬했던 광주에는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수많은 광주 시민을 살상하고 대
             통령이 되었다.

               이렇게 총칼을 앞세우고 탄생한 전두환 군사정권은 ‘정의사회 구현’이란

             미명으로 사회 전반의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소위 ‘정화운동’을 추진하
             였는데, 정치와 종교의 분리가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
             교계에도 개입하였다. 한국 주요 종교 가운데 개신교나 천주교는 미국 등

             서양 열강과 연계가 끈끈하여 쉽게 통제하기가 어려웠지만, 불교는 세계

             의 눈치를 볼 게 없었다.
               더구나 당시 총무원장 월주스님은 군부의 지지 요구에 ‘정교분리 원칙’
             으로 거절하여 군부의 미움을 받았고, 종단 내에서도 내부 갈등이 벌어졌

             었다. 군부는 10월 24일 보안사령부에서 “불교계 정화수사 계획(45작전계

             획, 조계종 총무원 주소인 ‘견지동 45번지’에서 유래)”을 수립하고 계엄군을 동원하
             여 군사작전 하듯이 1980년 10월 27일 새벽을 기해 전국 3천여 사찰에 법
             난을 자행하였다.




                법난의 수습을 위해 봉암사 선승들이 나서다


               10월 27일, 봉암사에 군인들이 망동을 하고 나간 뒤 봉암사 대중들은 공

             사를 열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자고 몇 사람을 뽑아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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