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 - 고경 - 2023년 2월호 Vol.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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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지기도 했어요. 행정을 잘 모르
니까 아침에 종무회의 시작하면 점
심때까지 하니 직원과 군인들이 맨
날 회의만 하다가 날 센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고 회고하였다.
그렇게 11월에 시작한 소임은 이
듬해 1981년 2월까지 4개월 동안 이
어졌고, 고우스님은 온 힘을 다해서
일했다. 그때 고우스님의 나이는 43
세였고, 출가한 지 어언 20년이 되었
다. 소임을 맡고는 먼저 총무원장 월
주스님을 비롯하여 강제 연행된 스
님들의 석방을 요구해서 관철시켰
고, 압수된 개인 물품도 돌려주었다.
사진 6. 『불교신문』 창간호와 성철스님의 제언.
또, 당시 발간되던 『대한불교』가
군부의 언론 탄압으로 발행이 중지되어 있었다. 다시 복간하려니 군부가
반대했다. 수좌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 문제는 적명스님이 강경했다. 신
문을 못 내게 하면 우리는 다 그만두고 산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래
서 새로 『불교신문』이라는 제호로 창간하는 형식으로 신문을 발간했다.
당시 『대한불교』가 안고 있던 빚 1천여 만 원도 싹 갚았다. 『불교신문』 창
간호는 1980년 12월 21일자로 발행되었는데, 거기에는 해인총림 방장 성
철스님의 「한국불교의 전통과 전망 - 불교중흥을 위한 제언」이라는 말씀
이 창간호인 1호와 2호에 걸쳐 크게 실렸다. 이렇게 하여 봉암사 수좌들이
총무원을 맡아서 10·27법난을 수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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