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2 - 고경 - 2023년 2월호 Vol.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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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밝고 바람 맑아 기쁨이 넘쳐나네.
바깥손님 오지 않고 산새 소리만 들리는데
대숲으로 평상 옮겨 누워서 책을 보네. 7)
시냇가, 띠집, 밝은 달, 맑은 바람, 산새, 대숲, 그야말로 그림 같은 풍경
입니다. 사람들이 동경하는 은자隱者의 삶이 이 속에 있습니다. 이 시의 묘
미는 ‘누워서 책을 본다’는 데 있습니다. 나도 평생 책을 읽을 때는 대체로
누워서 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책을 오래 읽으려면 아무래도 누워서 읽
는 것이 더 편안합니다.
누워서 책을 읽는 거야 범부도 따라 할 수 있겠지만, 시냇가 띠집에 살
면서 달과 바람에도 넘치게 기뻐하는 마음은 범부가 따라가기 어려운 경
지입니다. 이런 경지는 욕심을 버려야 가능한 청정한 경지입니다. 우리가
만약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청정하게 된다면 선악을 구별하는 장애가 없
어지고 선악에 구애되지 않는 대범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의 바쇼(1644~1694)도 대나무에 대해 아름다운 시 한 수를 남겼습니다.
뻐꾸기 울움이
큰 대나무를 채웁니다
달밤이 새도록 8)
7) 吉再, 『冶隱集』, 述志, “臨溪茅屋獨閑居 月白風淸興有餘 外客不來山鳥語 移床竹塢臥看書.”
8) 松尾芭蕉, 『嵯峨日記』, 1691. 4.20條 : “ほととぎす大竹藪をもる月夜.”
‘ 호토토기스’는 두견새를 말한다. 두견새는 뻐꾸기과에 속하며, 일본에서 두견새가 차지하는 국민적
정감, 문화적 위상, 울음소리 등을 고려해서 뻐꾸기로 번역하였다. 두견새는 뻐꾸기보다 조금 작지만
뻐꾸기처럼 아프리카에서 월동하고 오는 철새이며 탁란을 하는 등 뻐꾸기와 거의 비슷하다. 두견새
나 뻐꾸기는 밤에는 잘 울지 않아서 소쩍새를 호토토기스로 오인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소쩍새
로 번역할까 몇 날 며칠 고민하다가 오인의 가능성까지 살려 두고 싶어서 뻐꾸기로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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