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1 - 고경 - 2023년 3월호 Vol.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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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공간이 실체적으로 존재한다면 유지라는 말이 필요 없을 것이지만 생멸
             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다투(dhātu)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감각기관 각각의 감각기능에 의해서 펼쳐진 공간이 안계眼界에서 의계意
             界까지이고, 감각기관의 대상인 감각대상에 의해서 펼쳐진 공간이 색계色

             界에서 법계法界까지이다. 그리고 이들 각각과 인식주체의 인식에 의해서 생
             멸하면서 펼쳐진 공간이 안식계眼識界에서 의식계意識界까지이다. 이렇게 열
             여덟 종류의 십팔계十八界라는 공간이 매순간 펼쳐지고 있다.

               처는 놓여져 있는 것을 분류한 것이라면 계는 처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

             을 분류한 것이다. 즉 처는 인식주체를 분류한 것이라면 계는 인식주체가 만
             들어 낸 것, 인식한 것을 분류한 것이다. 이 계는 매순간 생멸한다. 인식주체
             의 식識도 또한 존재이므로 생멸의 특징을 가진다. 이러한 생멸의 특징이 인

             식주체에 의해서 인식될 때, 이는 시간 즉 세世로 인식된다. 과거, 현재, 미

             래라는 삼세三世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계界와 세世가 인식주체에
             의해서 만들어지게 된다.
               인식에 의해서 세계世界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때의 세계는 하나의 뜻을

             가진 단어가 아니라 인식주체에 의해서 만들어진 시간과 공간을 함께 말한

             다. 그러므로 인식과 세계는 같은 외연을 가진다. 인식론과 세계론은 동등한
             외연을 가진다. 이는 존재론과 연기론이 동등한 외연을 가진 것과 같은 의미
             라고 할 수 있다. 존재 자체의 특징에 의해서 연기라는 운동법칙이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식이라는 특징에 의해서 세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인간은 어떤 고정불변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세계는 인간에 의
             해서 만들어진다. 우리는 매순간 세계를 감각하고 창조해 나가는 것이다. 나아
             가 모든 유정물이 감각기관을 통해서 감각대상을 인식하면 계界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인간만의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유정물에게 세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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