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5 - 고경 - 2023년 4월호 Vol.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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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는 철학의 영역일 뿐이고 과학은 철학에 아
             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
             한 이원론은 과학파의 ‘과학만능주의’에 대항

             하려는 논리적 기초를 구성한다. 과학이 만능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것은 물질 영역에
             제한된다는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근대 시기에 중국인들이 파악한 서양 문화

             의 핵심은 실용적인 ‘과학’과 봉건제를 반대하                  사진 6.  과학과 인생관에 대한 논
                                                             쟁을  다룬  『중국의  과학
             는 ‘민주주의’였기에 과학과 형이상학 논쟁은                        과 형이상학 논쟁』, 한국
                                                             문화사(2015).
             더욱 치열하게 이루어졌다. 5·4 신문화운동
             때에는 서양의 과학, 즉 사이언스(science)를 ‘새선생赛先生’이라고 부르고,

             민주주의, 즉 데모크라시(democracy)를 ‘태선생泰先生’이라는 별칭으로 불렀

             다. 당시 ‘새선생’과 ‘태선생’, 이 두 선생은 중국 근대화의 상징으로 여겨졌
             고, 이 두 분의 선생을 모셔 오는 것이 중국 근대화의 첫 번째 과제였다.
               이처럼 과학만능주의자들이 즐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현학파들이

             정면으로 반대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과학과 기술 문명이 만능이 아니라

             는 것이다. 과학파는 이들 현학파에 대응하여 인생관도 경험으로 환원될
             수 있고 인과율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과학적 방
             법·과학적 태도·과학 정신에 기초한 과학적 인생관을 성립시켜야 함을

             주장하였다.

               과학파는 현학파의 주장이 본체론이라는 ‘검증불가능한 영역’으로 도
             망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형이상학적 본체론을 부정하였다. 그들은 우리
             의 감각 범위 밖에 있는 어떠한 정신 실체나 물질 실체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며, 따라서 증거를 제시할 수 없는 본체론은 모두 신앙·교조·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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