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2 - 고경 - 2023년 4월호 Vol.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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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가를 논하는 ‘과학과 형이상학 논쟁, 또는 과학과 인생관 논쟁’이다.
           이 논쟁들은 근대 시기에 서양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
          제와 연관되어 발생하였고, 철학, 종교 등에 중요한 사상적 배경으로 작용

          하였다. 당시에도 물론 서양 세력과 문화를 무조건 배척하는 완고한 보수

          파도 있었지만, 서양 세력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식민주의의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이들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였다.
           서양 문화와 사상을 받아들여 중국을 근대화시키려는 근대화 운동은 당

          시 상황에서는 피할 수 없는 조치였다. “힘 있는 서양의 학문을 배우자!”는

          민족주의적 노력은 가혹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는 방법이었고, 그
          것은 과학 기술, 정치, 문화라는 세 단계에서 양무운동 → 무술변법·신해
          혁명 → 5·4 운동의 역사적 사건으로 나타났다.

           동서문화 논쟁은 동서 문화의 본질에 관한 논의로, 당시 지식인들은 동

          방문화파와 서방문화파로 나뉘어 대규모 논쟁을 진행하였다. 동방문화파
                                       는 동양 문화를 우월한 정신 문화로, 서
                                       양 문화를 저급한 물질 문화로 파악하

                                       여 동양 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하였다.

                                       동방문화파는 서양을 정신성이 없는 물
                                       질문명으로만 매도하였고, 동양이 서양
                                       에 비해 물질적으로 뒤떨어진 것이 마

                                       치 정신성에만 치중했기 때문인 것으로

                                       합리화하였다. 이러한 사고는 전통문화
                                       와 전통철학의 가치를 높임으로써 민족

          사진 3.  『광인일기』, 『아Q정전』 등 반외세,   주의적 자존심을 북돋는 역할을 했다고
              반봉건적 내용을 담은 소설을 쓴
              노신魯迅.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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