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고경 - 2023년 4월호 Vol.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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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서장』을 간화선의 교과서
                                    로 삼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서장』에
                                    는 「대혜선사행장」이라는 것이 서문의 앞

                                    에 추가되어 있다. 이 행장은 여러 판본을

                                    참고하여 누군가가 새롭게 구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완전히 동일한 문건은 발견되지

          사진 3. 『대혜보각선사서(서장)』.      않는다. 특히 대혜스님이 원오스님의 개당
          설법을 듣다가 시간의 앞뒤가 끊어지는[前後際斷] 체험을 하는 장면의 묘사

          에는 일반적으로 전하는 사실과 다른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한 중이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곳이 모든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입니까?” 운문스님이 대답했다. “동쪽 산이 물 위를 간다.” 나(원

              오)는 그렇게 말하지 않고 딱 이렇게 말하겠다. “따뜻한 바람이 남
              쪽에서 불어오니, 법당의 모퉁이에 서늘함이 일어난다.” 스님이 이
              것을 듣고 홀연히 시간의 앞뒤가 끊어졌다. 이에 원오스님이 그를

              택목당擇木堂에 머물면서 업무를 맡지 않는 시자로 임명하고 전념

              으로 보임[專念保任]하게 했다.


           대혜스님은 앞과 뒤가 끊어지는 자신의 체험을 깨달음으로 여겼다. 그

          러나 원오스님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것이 남다른 차원

          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것은 죽기만 하고 다시 살아나지 못한 차원이다.
          이때 화두참구를 멈춘다면 큰 병이 될 것이다.”는 지적을 한다. 대혜스님
          은 이에 새로운 화두참구에 들어간다. 그 결과 막힘없는 깨달음을 성취하

          여 원오스님의 인가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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