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4 - 고경 - 2023년 5월호 Vol.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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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無明行識이면 오취온이고 윤회의 주체가 되는 반면, 명행식明行識이면 오
법온이고 윤회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식은 불교마음학의 주제가 된다. 식識이 명행明
行과 결합하게 되면 식識의 원래 모습이 드러나서, 번뇌가 없는 청정한 상
태의 식識이 된다. 이러한 식識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 오온의 가
능성이 현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명明에 의한 행行, 육입六入,
수受, 상想으로 나아갈 것인가, 무명無明에 의한 행, 육입, 수, 상으로 나아
갈 것인가의 문제이다. 마음의 본모습을 알고자 하는 마음학의 목적은 십
이연기와 오온의 본래의 식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고, 보는 것이다. 이
모습을 발견한 이가 붓다이고, 이를 보는 것이 견성見性이다. 무명이 없는
행을 통해서 마음과 존재의 원래 모습을 발견하고, 본 것이다.
심리치료적 함축은 명확하다. 붓다가 발견한 십이연기의 과정을 통해서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면, 문제의 원인을 없애기 위해서는 번
뇌를 없애는 방법이 있고, 마음의 원래의 모습을 보는 방법이 있다. 번뇌
가 없으면, 즉 명행明行이 되면, 마음의 원래 모습, 즉 식識이 드러나게 된
다. 식識의 원래의 모습을 보더라도 무명행無明行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
수 없다. 마음의 원래의 모습에 의지하여 수많은 무명행無明行을 명행明
行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식識은 원래 명明이다. 마음은 원래 빛이 난다.
무명無明은 항상 행行과 함께한다. 식의 원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무명
행無明行일지, 명행明行일지는 이후의 부지런한 번뇌 다루기에 달려 있다.
견성을 돈오頓悟라고 할 수 있다면, 돈오점수頓悟漸修인 것이다. 불교심리
치료에서는 견성見性이라는 마음학의 측면과 점수漸修라는 심소학의 측면
을 모두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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