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5 - 고경 - 2023년 6월호 Vol.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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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어 불교계의 공론으로 자리 잡았다. 그 요지는 태고보우가 전수한 임제
종의 정통 법맥이 휴정으로 전해졌다는 것으로, 이러한 인식은 조선 후기
불교계의 정체성을 형성했다. 종조론을 중심으로 본 태고보우의 지위에 관
한 이영무의 논문(1977)은 법통 문제를 다룬 선구적 연구로서 주목된다. 그
는 여기서 중국의 임제종 법통보다는 고려 말 불교계를 포섭하려 했던 보
우의 원융 정책과 통불교의 추구에 더 큰 의미를 두었다.
이영무가 태고법통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불교 정화와 종조 논쟁의
가열, 조계종과 태고종의 분리라는 당시 불교계의 혼란상이 주요한 원인
이 되었다. 태고법통은 근·현대기에도 그 역사적 권위를 잃지 않았지만,
한편으로 신라의 도의가 한국 선종의 개조라는 주장이 나왔고 1950년대의
불교 정화과정에서 태고와 보조 종조론이 맞부딪히기도 했다. 그 결과
1962년 통합종단 대한불교조계종이 출범하면서 종조 도의, 보조지눌의 중
천, 중흥조 태고보우라는 복합적 역사 인식으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대처
측이 1970년 조계종에서 갈라져 나와 태고종을 세우면서 단독으로 태고보
우를 종조로 내세웠다. 법통에 대한 이영무의 인식은 이러한 시대 배경에
서 나온 것으로, 그는 태고보우가 한국불교의 중흥적 중시조로서 높은 위
상을 갖는다고 보았다.
이영무는 재가승으로 걸어온 자신의 이력 때문인지 환속이나 대처의 경
험이 있는 원효, 김시습, 한용운에 관한 논문을 썼다. 그리고 재가자인 유
마거사가 주인공인 『유마경』을 해설한 『유마경 강설』(1989)을 펴내기도 했
다. 이처럼 출세간과 세속의 경계를 넘나드는 승속불이僧俗不二의 길을 학
문 연구에 녹여내려 한 것은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 복잡다단한 경험에
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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