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고경 - 2023년 6월호 Vol.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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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탄허스님이  각화사를  보
             고는 “다섯 용이 여의주를 다
             투는  형국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도  이렇게는  만들기

             어려운  명당”이라고  격찬한
             도량이 태백산 각화사다.                사진 1.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봉화 각화사 태백산사고
                                               옛 모습. 화재로 불타버리고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각화사에서  왼쪽  산길로
             1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서

             암이  있다.  암자라기보다는
             토굴에 가까운 세 칸 정도 되
             는 집이다. 그래도 마당이 제

             법 넓고 또 약간의 채전도 있

             으니 혼자살기에는 좋은 터
             였다. 서암 마당에 서면 뒤와
                                          사진 2.  고우스님께서 사상적인 전환을 이룬 태백산 각화
             좌우는  산등줄기가  감싸고                   사 서암.

             있고, 앞은 확 트여 멀리 청량산 최고봉이 둥글게 보이는 도량이다. 서암

             은 6·25전란 중에 한 보살님이 와서 판잣집을 짓고 30년 동안 살았다. 이
             후 한 스님이 와서 불사를 하여 암자의 모양을 갖춘 뒤에 살다가 떠나고,
             1988년부터 고우스님이 들어가서 살기 시작했다.




                돈오점수에서 돈오돈수로의 사상적 전환


               각화사 서암에 바랑을 풀어놓고 편안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동안 출

             가 이후 스스로의 공부를 살펴보았다. 우리나라 선방이 당시에는 대개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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