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고경 - 2023년 6월호 Vol.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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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선문정로』에는 명쾌하게 정립되어 있었다. 그것도 성철스님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태고보우 국사와 나옹스님 같은 우리나라 조사들도 한결같
이 말씀하셨고, 또한 간화선을 만드신 『서장』의 대혜종고 선사나 『선요』의
고봉선사도 같은 법문을 하신 것을 알 수 있었다. 선문의 종장들이 한결같
이 말씀하시는 것은 깨달아 부처가 된다 함은 화두가 오매일여寤寐一如되
어 타파가 되어야 ‘확철대오廓徹大悟’, 무상정등각을 성취하여 생사를 해탈
하여 영원한 행복을 누린다는 것이다.
고우스님은 훗날 “선문의 바른 견해를 제시한 『선문정로禪門正路』가 너무
좋아 열 번도 넘게 봤다.”고 하셨다. 성철스님이 고구정녕하게 알려주신
선문의 정로는 돈오돈수頓悟頓修라는 것을 확연히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1975년에 우연히 남해 용문사 염불암에서 성철스님께 “돈오점
수가 맞지 않습니까?”하고 대들었던 일이 생각나서 뒤늦게 참회하는 부끄
러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고우스님은 각화사 동암에서의 깨달
음을 계기로 ‘백척간두 진일보’의 뜻을 알게 되었고, 당신의 공부를 점검하
기 위해 경전과 조사어록을 살펴보던 중 『선문정로』를 보고는 그동안 돈오
점수하던 입장을 바꾸어 돈오돈수 안목으로 다시 화두를 들기 시작했다.
도반들과 선어록 공부를 시작하다
그때 선납회禪衲會라고 선방 수좌들의 모임이 있었다. 본래 1967년 선림
회禪林會로 출발했는데, 선림회가 흐지부지되고 1982년경 고우스님과 적명
스님이 주도하여 선납회가 출범한 것이다. 창립 취지는 결제철에는 선방에
서 열심히 정진하고 해제철에는 모여서 선어록을 공부하자는 뜻으로 만들었
으나 당시나 지금이나 수좌들이 선어록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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