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고경 - 2023년 6월호 Vol.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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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점수頓悟漸修의 입장에서 수행해 왔다. 그런 입장에서 1971년 심원사에
서 공空을 체험하고는 돈오했다고 확신하였다. 이제 공을 알았으니 남아
있는 전생의 습기와 미세망념을 점차 없애 가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
다. 그 후 17년이 지난 1988년 동암에서 심원사에서 얻은 것보다 더 강렬
한 깨달음을 체험한 것이다.
동암에서 ‘정혜 통류’와 ‘백척간두 진일보’를 깨닫고 보니 심원사의 깨달
음은 그냥 공을 체험한 것이지 확철대오의 깨달음은 아니었다. 그래서 고
우스님은 이 깨달음에 대하여 다시 공부를 점검하고 분명한 정립이 필요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특히 그동안 가까이 모셨던 서암스님, 지
유스님과의 인연으로 돈오점수 공부를 지침으로 해 왔는데, 이제는 돈오
돈수에 대해서도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은 시중에 나가서 성철스님의 『선문정로禪門正路』와 『본지풍광本地
風光』 그리고 해인사 백련암에서 발간한 ‘선림고경총서’와 민족사의 ‘깨달음
총서’ 시리즈를 몽땅 구해 와서 서암 책상 위
에 쌓아놓고는 한 권씩 읽어 나갔다. 예전에는
선어록을 보다 막히던 대목이 더러 있었는데
이제는 술술 읽혔다. 그리고 조사어록 보는 재
미가 났다.
그렇게 스님은 많은 조사어록과 불교 교리
서를 보던 중, 성철스님이 스스로 “부처님께
밥값했다.”고 하신 『선문정로』를 보고는 “과연
성철스님이구나!” 하며 탄복했다. 그동안 고
사진 3. 성철스님이 “부처님께 밥 우스님이 참선하면서 돈오점수의 입장에서
값했다.”고 자평하신 『선문
정로』(장경각). 뭔가 석연치 않던 깨달음, 견성성불에 대한 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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