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9 - 고경 - 2023년 7월호 Vol.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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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1년에 다시 천왕
             문을 세웠다는 기록
             도 있는 것으로 보

             면,  천왕문은  그간

             에  소실과  중건을
             반복한 것 같다. 은          사진 8. 김정희 글씨, <대웅전> 현판.
             해사가 종친부에 귀

             속되면서 사세가 확장되어 가던 시절의 모습이기도 하다. 추사秋史 김정희金

             正喜(1786~1856) 선생이 쓴 「은해사銀海寺」라는 현판은 이 천왕문에 오래 걸려
             있었다. 천왕문에는 사천왕탱이 두 폭 있었고, 안쪽 문미에는 「옹호문擁護門」
             이라는 현판도 걸려 있었다. 이 천왕문을 들어서면 종각이 옆에 따로 있었

             고, 앞에는 보화루가 서 있었는데, 이를 지나면 좌우에 심검당尋劒堂과 열선

             당說禪堂이 서 있는 대웅전의 중정中庭으로 들어서게 된다(사진 8).
               옛날의 이러한 가람 배치가 가람배치방식에도 맞고 품격도 훨씬 높다.
             지금은 천왕문은 온데간데없고, 개울을 건너면 갑자기 사람 앞에 떡하니

             서 있는 보화루를 직면하게 된다. 1980년대 경내를 넓히면서 보화루를 원

             래의 자리에서 옛 천왕문 자리인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건물을 새로 신축
             을 하는 경우에는 구 사역은 최대한 수리 보존하는 방향으로 하고 신 사역
             에 새 건물을 짓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보화루에는 추사선생이 쓴 현판이 걸려 있다. 골기를 죽이고 육기를 강

             조하되 기교를 최소화한 글씨인데 붓을 천천히 움직여 쓴 것이다. ‘문자
             향文字香’을 크게 내세우지 않은 담담하고 육중한 글씨다. 그 당시의 추사
             선생의 삶과 심경이 드러나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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