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 - 고경 - 2023년 7월호 Vol.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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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은 다가왔고, 저는 눈이 빠지게 종로 거리만 바라보며 하루
             를 보냈으나 등을 든 행렬만 지나갈 뿐, 축하 군중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행
             사를 마치고 며칠 후 평가회의에서도 군중 동원 실패에 대해서 각자 의견을

             내고 “내년에는 좀더 잘해 봅시다.”라고 하면서 회의를 마쳤습니다.

               그 다음해인 2000년 부처님오신날에는 강남 봉은사 신도 500여 분이
             이전과는 판이하게 T자 모양 등을 머리 위까지 높이 들고 연등행렬에 동
             참했습니다. 전에는 가슴 높이까지 팔을 들어 한 손에 등을 들고 걸으니 불

             빛이 멀리 가지 못하고 자기 앞만 비춰 어두웠다면 T자등은 등을 높이 들

             어 올려 등을 든 사람 머리 위 좌우로 등이 하나씩 켜지니 한 사람이 두 개
             의 등을 높이 들고 걷는 셈이 되어 주위도 환하게 밝아지고 등수도 배가 되
             어 그야말로 장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연도에 모인 신도와 시민들도 박

             수로 환영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T자등을 든 신도님들에게는 말 못할 고생이 있었으니, 등 안에
             촛불을 켜고 먼 길을 걷다 보니 촛농이 옷이나 손에 떨어져 행사를 마치고
             나서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다음해에는 초 대신에 렌턴을 이용하

             여 T자등을 밝히는 데 성공은 했으나 “허리가 끊어지게 아프다.”는 노보살

             님들의 눈물 어린 호소에선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어려운 숙제는 연도에 대중을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그
             래서 봉축위원회 담당자들이 묘안을 냈습니다. 당시 봉축행사를 위해 동대

             문운동장에 모이는 인원은 다섯 등단으로 나눈 1만 5천여 명 정도였는데,

             출발하기 위해 스탠드에서 지루하게 기다리느니 4,5등단을 먼저 출발시켜
             동대문에서 종로5가까지 열을 지어 연도에 서 있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매년 각 종단의 어른 스님들이 1등단으로 출발하는데 4,5등단 동참자들이

             먼저 출발하여 거리에 서 있다가 1등단 큰스님들이 도착할 때 꽹과리, 북,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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