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 - 고경 - 2023년 7월호 Vol.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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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에 방으로 돌아와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며 지금까지와는 다
른 특색 있는 연등 봉축행사를 어떻게 구상해야 할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때 문득 성철 종정 예하의 다비식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다비장으로 밀려들고 밀려나가는 인산인해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한마
음 한뜻으로 성철 종정 예하가 서방 극락정토로 떠나시는 길을 환송하던
장엄한 염불소리가 귀에 생생하게 울려퍼졌습니다. 그 누구에게서도 슬퍼
하는 기색은 찾을 수 없었고, 오직 큰스님의 극락왕생을 염원하던 거룩한
모습, 장엄하고 아름다웠던 풍경이 만화경처럼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해인사에 도착한 추모객들이 하나같이 고령인터체인지부터 관
광버스는 거북이걸음이었다고 하고, 걸어서 온 사람들은 어깨가 부딪칠 정
도로 사람들이 많았다며 기진맥진해 있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또한 당
시 참배객들을 안전하게 소통시켜 주던 한 경찰 관계자로부터 “고령부터
해인사까지 100리 가까운 길에 대략 30만~50만 명의 사람들이 길게 늘어
서 있었던 듯합니다.”라고 했던 후일담도 떠올랐습니다.
“그렇다. 부처님오신날, 불자들이 종로 거리에 10만 명이고 50만 명이고
모여 석가모니불을 합송하며 부처님의 탄신을 축하한다면 그것만큼 수승한
불사가 어디 있으랴.”고 생각하니 가슴이 고동쳤습니다. 한마음으로 결집된
신심의 열기는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것임을 체험한 소납으
로서는 연등축제가 열리는 연도에 수많은 신도들이 모여 “석가모니불”을 합
송한다면 세상에 없는 멋진 봉축행사가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대책회의 때 직원들에게 “부처님오신날 종로 거리에 신도들이
얼마나 모입니까?”라고 물으니 다들 눈만 끔벅거렸습니다. “노력은 해 보
았지만 다 자기 절 행사가 바빠서 협조가 되지 않습니다.”라는 대답이 돌
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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